6월 12, 2024

‘ 김영권, 축구선수를 직업으로 삼은 지 13년 ‘

 

김영권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https://blog.naver.com/kygman0227/223183220757

▲김영권 선수 블로그

 

축구선수도 직업이다. 학창 시절엔 그저 축구가 좋다는 생각으로 뛰었다다면,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직업인으로서 좀 더 진지해진 것 같다. 여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성과를 내고 인정받고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매 경기 점수사 매겨지고, 그 점수가 모여 다음 팀이나 리그가 결정된다. 그렇게 일본, 중국을 거쳐 K리그(한국)의 잔디를 밟고 있다. 2022년부터 울산현대 소속으로 뛰고 있다. 어떤 리그에 있든, 어떤 팀에 있든 목표는 단 하나다. 우리 팀의 우승.

【 축구와 풋살의 차이 】

2008년 전주대학교에 입학했다. 1월부터 바로 전주대학교 정진혁 감독님의 지도 아래 동계 훈련을 시작했다. 감독님은 풋살팀을 함께 지도하고 계셨다. 감독님의 권유로 풋살팀에서도 뛰었다. 같은 전주대학교 소속으로 어떨 땐 축구팀으로, 어떨 땐 풋살팀으로 대회를 나갔다.

풋살은 실내 코트에서 골키퍼를 제외한 4명의 선수가 치르는 경기다. 공간이 좁다 보니 뭐든지 빨랐다. 볼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으면 위험했다. 공간을 찾아 빠르게 패스하고 바로 뒤돌면 다시 패스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여기서만큼은 수비수도 공격수도 없다. 모두가 만능 플레이어여야 한다. 풋살팀에서 뛰면서 골 맛을 제대로 봤다. 2009 KFA 풋살 리그에서 득점왕에 오를 정도였다. 득점왕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생소한 타이틀이다.

▲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조별예선 경기 김영권 선수 모습
▲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조별예선 경기 김영권 선수 모습

 

축구, 풋살 겸직은 국가대표까지 이어졌다. ‘2009 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이라는 결과를 내고 돌아 온 지 보름 만에 ‘실내아시아경기대회 풋살 경기’에 출전했다. 축구 대표팀 동료 선수들도 신기한 듯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2010년 J리그(일본)에 진출하면서 풋살과 이별하게 됐다. 만약 한국에 계속 있었더라면 풋살과 축구를 계속 왔다 갔다 했을지도 모르겠다. 풋살에서 배운 노하우와 경험들은 지금도 야무지게 써먹고 있다. 열심히 했던 경험은 어디 가지 않더라.

【 일본, 중국, 그리고 다시 일본 】

▲ 파주 축구 국가대표 훈련장에서 훈련하는 김영권 선수 모습
▲ 파주 축구 국가대표 훈련장에서 훈련하는 김영권 선수 모습

 

FC도쿄와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차례로 J리그를 경험했다. 유럽 못지않은 인프라에 놀랐다. 축구 장비나 잔디 상태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관리되고, 모든 시스템이 선수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J리그는 치열한 몸싸움보다는 아기자기한 패스 플레이가 돋보이는 곳이다. 조직력이 승부를 결정짓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J리그 진출 3년 만에 중국의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팀으로 이적했다. 마르첼로 리피 감독님의 영향이 컸다. 직접 통화를 하는 건 물론이고 경기를 보러 오시기까지 했다. 나를 어떤 자원으로 쓸지 이미 계획이 있으신 듯했다. 꼭 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에 이적을 결심했다. (이럴 땐 좀 F인 것 같다. 참고로 김영권의 MBTI는 ESFP다.)

▲ 광저우FC는 2015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했다. 왼쪽 아래에서 두번째 28번 김영권 선수 모습
▲ 광저우FC는 2015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했다. 왼쪽 아래에서 두번째 28번 김영권 선수 모습

 

광저우FC에서 6년을 뛰었다. 중국은 스케일이 달랐다. 광저우FC뿐만 아니라 모든 구단에 막대한 투자금이 들어갔다. 대부분의 경기가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축구 열기가 대단했다. 어쩌다 마주치는 팬분들은 적어도 10년은 알고 지낸 친구인 것처럼 친근감 있게 다가와 주셨다. 그분들만의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인 것 같다.

2019 시즌을 앞두고 일본 감바 오사카팀으로 옮겼다. J리그가 익숙하기도 했고 오재석 선수 등 한국 선수가 이미 뛰고 있는 팀이라 잘 적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사카 홈 경기에 태극기를 들고 와서 응원해 주시는 일본인 팬 분들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뛰었다.

그렇게 3년을 채우고 2022년 드디어 K리그 선수가 됐다. 울산현대는 K리그 팀 중에서 점유율 축구를 가장 잘 구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볼을 오랫동안 소유하면서 빌드업을 통해 점수를 내는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커리어 내내 해외 생활을 했기에 K리그가 낯설 수도 있지만 별다른 어려움 없는 긋 경기를 치룰 수 있었다. 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췄던 선수들, 현재 대표팀에서 함께 하는 선수들이 있기에 적응이 수월했다.

데뷔전에서도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큰 틀에서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이색적인 게 있었으니 바로 한국말이다.

가장 마음을 흔든 사람은 단연 홍명보 감독님이였다. 2009 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부터 맺어진 인연이다. 중앙 수비수랑 자리를 직접 뛰셨기 때문에 감독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더 와닿았다. 홍명보 감독님과 함께 울산현대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 울산현대축구단 19번, 김영권 】

2022년 울산현대는 지독했던 징크스를 뚫고 17년 만에 K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팀의 우승은 언제나 짜릿하고 달콤하다. 한 경기를 승리하기만 해도 날 듯이 기쁜데 우승은 오죽할까, 다만 그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다음 시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승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2023 시즌에서도 울산현대는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지난 5월엔 K리그 데뷔골도 넣었다. 올해도 목표는 우승이다. 가을까지 부상 없이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어떤 팀에서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수의 임무다. 다시 말해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 축구선수도 직접이다.

글 = 김영권

에디터 = 이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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